정치 & 인물

박영선의 어제와 오늘(펌)

리멘시타 2014. 8. 13. 14:22

 

 

                        독배를 마신 박영선, 촉망받던 정치인의 추락은 한순간이었다

                           

박영선은 야권에서 가장 촉망받는 (여성) 정치인이었다. MBC 앵커 · 기자 출신으로 선배인 정동영 상임고문의 러브콜을 받고 정계에 입문했던 그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션했다. 경제 전문 기자 출신답게 누구보다도 재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지난 2005년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금산법 정부안은 삼성 봐주기"라는 명확한 목소리를 내면서 삼성과 정면으로 맞서기도 했다. 물론 그로부터 1년 후에는 다소 허망하게 금산법 개정안에 찬성하긴 했지만 말이다.


 

세월호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월호 단식 농성장을 찾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 씨와 면담을 하고 있다.


2008년(제18대 총선) 구로 을에 출마해 당당하게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그는 기피 상임위로 꼽히는 법제사법위원회를 자처해 간사로 활약했다. 당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박남매'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쳤다. 2008년 10월 감사원 국정감사에서는 KBS 감사의 문제점을 끈질기게 파헤쳐서 결국 김확식 감사원장으로부터 시인을 받아내기도 했다. 당시 감사원 직원들의 술자리에서는 "박영선 때문에 돌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법무장관 ·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와 국감 등에서 검찰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박영선 의원은 검찰이 거의 유일하게 가장 껄끄러워하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박 의원은 대검 중수부 폐지, 특별수사청 신설 등 검찰이 가장 아파하는 개혁안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그의 존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2011년 10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치러지게 된 재보궐선거에서 박영선 의원이 민주당 후보로 뽑히자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던 검찰 간부들이 내심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박영선의 존재감을 잘 드러내주는 일례이다.


 


비록 박원순 후보에게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서울시장을 향한 꿈은 접었지만, 오히려 그 패배는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 것이 아니라 되려 전화위복이 됐다. 그만큼 그의 정치적 미래는 밝기만 했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3선에 성공했고, 19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이로써 박 의원은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법사위원장, 두 번째 비(非)법조인 법사위원장이라는 기록도 보유하게 됐다.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14년 5월 박영선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헌정사상 첫 여성 원내대표의 탄생이었다. 이제 박 의원은 야권의 가장 유력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대로라면 차기 대권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위치에 이른 것이다. 정치적 야심이 큰 그에게 고지는 코앞까지 다가온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가 클라이맥스였을까? 상황은 이상하게 꼬여갔다. 7 · 30 재보궐 선거의 참패로 인해 김한길 · 안철수 공동대표가 사퇴하면서 지도부의 공석이 생겨버렸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서 누구 하나 '구원 투수'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전면에 나섰다가는 내년에 있을 전당대회에 출마할 수 없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결국 '독배'를 든 것은 박영선 의원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박영선 의원은 비상대책위원장 직을 맡으면서 "다들 독배를 마시라고 하니 마시고 죽겠다"라며 결기를 다진바 있다. 그만큼 죽을 각오를 하고 쇄신하겠다는 표현이었겠지만, 그것은 단지 비유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독배'를 마셨고 '죽음'의 길로 향하고 있다. 그 출발점은 바로 '세월호 특별법 합의'였다.



"세월호 특별법에 유가족 분들의 그 아픈 마음을 다 담지 못해서 죄송하다. 진상조사위 구성 비율에서 유가족 추천 몫을 3명 포함시킨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


지난 7일, 박영선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의 이완구 원내대표와 만나 '세월호 특별법'에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시기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내용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합의였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시종일관 주장했던 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내용은 빠져 있었고, 특별검사 추천권도 상설특검법에 따르기로 결정됐다. 얻어왔다고 하는 것은 조사위의 구성에서 유가족 추천을 3인으로 한다는 것이었지만, 이는 본질적인 부분도 아니었고 '얻어왔다'고 자부할 만한 내용도 아니었다.


이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합의에 시민사회는 분노했다. 야권 지지자들도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등을 돌렸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 46명은 "지난 7일 여야 원내대표 간의 세월호특별법 합의는 유족과 국민의 여망을 담아내지 못했다.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의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친문재인계와 초재선 의원 그룹의 반발은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새누리당이 이 상황을 정리하지 못하고 극복하지 못하면 158석을 가진 새누리당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집권당이고 150석 이상 가지고 있으면 원하는대로 다 해드리죠."


박영선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국민공감혁신위원장)을 맡고 난 이후부터 180도 변했다. 과거의 대쪽과 같은 이미지, 옳고 그름을 분명히 밝히고 타협하지 않는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다. 최근 들어 그는 '우리는 집권당이 아니에요. 우리는 과반 의석을 갖고 있지도 않아요'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무엇이 그를 약하게 만든 것일까? 무엇이 그를 종이 호랑이로 바꾸어 놓은 것일까?



새정치민주연합은 의총을 통해 '재협상'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현실적으로 '재협상'은 어려워졌다. 한 번 합의를 한 마당에 새누리당이 물러설 리가  세월호법 재협상, 헛된 기대 버려라 라는 글에서 썼던 것처럼, 새정치민주연합은 '재협상'이라는 명목 하에 '추가 협상'을 노릴 것이다. 거기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특검 추천권이나 조사위의 구성 비율을 좀더 유리하게 이끌어내는 것 정도일 것이다.


"국민의 마음으로 국민이 공감하는 정치를 실천하겠습니다"라던 박영선 위원장은 고작 일주일 만에 자신의 모든 정치적 자산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너무나 무거운 짐을 한꺼번에 짊어졌기 때문에 생긴 과부하 때문이었을까? 박영선의 갑작스러운 변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 더할나위 없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