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흥섭의 ‘선인의 풍류’
술잔을 들고 달에게 묻노라
일찍이 천연의 풍광에 젖어 신선세계로 이끌린 시인 이태백, 일평생 ‘술’과 ‘달’을 노래하다
이백에게 어두운 밤 하늘에 떠 있는 달의 정취는 낭만적 정감의 원천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백(李白, 701~762)의 자는 태백(太白)이다. 그의 어머니가 ‘태백성(금성)’이 품으로 날아드는 꿈을 꾸고 낳았기 때문이다. 그가 출생한 곳 은 서역 지방이고 당시의 행정구역으로는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에 속한 쇄엽(碎葉)이었다. 지금의 중앙아시아 한가운데에 위치한 키르키스공화국(Kyrgyz Republic)의 경내다. 이 나라는 국토의 80% 이상이 해발 2000m 이상인 내륙국이다.
그의 부친 이객(李客)의 삶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역에서 무역상으로 치부해 이백의 어린 시절에는 집안이 상당히 부유했다고 전한다. 이백의 부친은 외지에서 온 사람이어서 이름이 ‘객(客)’이다.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그녀가 한족인지 아닌지는 불확실하다.
이백의 조상은 수(隋)나라 말엽에 죄를 지어 서역으로 옮겨갔다가, 그가 다섯 살 무렵 아버지가 촉(蜀, 지금의 사천四川 지역)으로 되돌아왔다. 그곳이 바로 촉의 창명현(彰明縣) 청련향(靑蓮鄕)으로, 이백은 그곳에서 성장하면서 애착을 느껴 스스로 호를 청련거사(靑蓮居士)라 했다.
소년 시절의 이백은 집에서 독서와 검술에 힘썼다. 스스로 “5세에 육갑(六甲, 천간天干과 지지地支가 상합相合하여 생겨나는 60갑자甲子의 약칭)을 외우고, 10세에는 백가서(百家書)에 통했다(五歲誦六甲, 十歲觀百家)”<上安州裴長史書)>고 했다. 청대(淸代, 1644~1911)에 <이태백문집집주(李太白文集輯註)>를 낸 왕기(王琦)의 고증에 따르면 이백의 <명당부(明堂賦)>는 15세에 지어진 것인데, 그 부에 인용된 낱말이나 고사 등을 통해 그가 수많은 서책을 독파했음을 알 수 있다.
젊은 이백은 특이하게도 학문만이 아니라 통상적인 다른 문인들과는 달리 임협(任俠, 약자를 돕고 강자를 물리치는 정의감)의 뜻도 품었다. 임협의 핵심은 의로운 행동이며, 임협의 필수 조건은 검술(劍術)이다. 의협심으로 사악한 무리를 제거하려면 협객 자신이 남보다 무예가 뛰어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6세에는 이미 검술에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고, 늘 칼을 차고 다녔다. 그에게 칼은 무기이자 ‘정의감과 호탕한 기개’의 상징이었다. 실제로 그는 여러사람을 칼로 베기도 했다. 스스로 “시퍼런 칼에 몸을 맡기고, 붉은 먼지 거리에서 사람을 베다(託身白刃裏, 殺人紅塵中)”<贈從兄襄陽少府皓>라고 읊었다. 세상을 올바르게 경영해보려는 꿈은 그의 임협기질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백은 당시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도교(道敎)의 영향을 받아 촉 지역 민산(岷山)에 수년간 은거하면서 도교의 도사들과도 내왕했으며, 24세에는 유명한 선산(仙山)인 아미산(峨眉山)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촉 지방의 맑고 아름다우면서도 기이하고 신비스러운 천연의 풍광은 일찍부터 그를 신선세계로 이끌었다. 그가 어려서부터 신선술(神仙術)과 노자(老子)를 좋아해 탈속적인 기풍을 지녔다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의 선풍초탈(仙風超脫)한 기풍은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젊은 날의 그는 이처럼 근육과 두뇌를 맹렬하게 정련해서 타고난 시문의 천재성에 호탕하면서도 박식한 재질을 겸비하게 되었고, 거기에다 세속을 벗어난 초탈적인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청신(淸新)한 풍모까지 더하게 되었다. 그러니 그런 그가 드높은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충만하게 된 것은 극히 당연한 귀결이리라.
젊은 주선(酒仙)의 노래
이백은 ‘월하독작 (月下獨酌)’이라는 제목으로 4수의 시를 지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대붕(大鵬)이나 준마인 녹기(?驥)에 비유했으며, 넘치는 자긍심과 뜨거운 임협의 정신으로 현실에 참여해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 뜻을 이루면 물러나 조용히 살고자 했다. 이러한 ‘공수신퇴(功遂身退)’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지표이자 이상이었지만, 744년 장안을 떠난 이후에는 고뇌와 실의에 찬 현실을 초탈하고자 신선세계를 더욱더 강렬히 동경하게 되었다.
장안을 나오자마자 바로 제주(齊州,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제남시濟南市)로 가서 도록(道?, 일종의 도사자격증)을 수여받고 정식으로 도교 도사로 입적한 것은 그런 심경을 대변한다. 그만큼 현실에서의 그는 너무나 불우한 존재였으며, 그런 그에게 음주(飮酒)는 상처받은 영혼의 ‘심미적 자기 치유’이자 또 다른 정신세계로 비상하려는 ‘형이상학적 몸짓’이었다.
이백이 ‘주선(酒仙)’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술을 즐기게 된 것은 호쾌한 그의 기질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특히 당대(唐代)의 풍류문화가 ‘시주풍류(詩酒風流)’라 할 만큼 시와 술이 그 어느 시기보다 밀착되어 있었던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당대는 경전(經典)뿐만 아니라 시문(詩文)으로도 관리를 선발하였으며, 점점 시문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문인(文人)이 관료가 되는 시대인 셈이다. 그리고 이들 문인관료들이 가장 탐닉한 것이 바로 술과 시, 그리고 기녀(妓女)였다.
술은 고대 이래로 중국 문인들이 모두 즐겨왔던 터이나, 당대에 이르러 음주는 하나의 트렌드(trend, 장기간 형성된 문화조류)였다. 당 이전시대의 통치자들은 평민들의 음주와 양주(釀酒)에 대해 거의 금지정책을 취했었다. 하지만 당대에는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금주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 결과 위로는 황실 귀족에서 아래로는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술을 즐겨 마셨는데, 특히 ‘신풍주(新?酒)’와 ‘금릉주(金陵酒)’ 등이 명주(名酒)로 유명했다.
중국에서 술에 대한 형이상학적 예찬은 위진시대(魏晉時代) 문인들에서 시작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위진 명사들이 보여준 술의 미학이 섬광처럼 번득인다. 당대 문인들의 음주도 그 기본 정신은 대동소이하다. 그들은 술을 통해 또 다른 정신경계를 찾았고, 끝없는 영감을 얻었다. 특히 이백은 취해 있을 때가 깨어 있을 때이고, 취해 있지 않을 때가 가장 혼미할 때라고 할 정도였다.
또한 지금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당대 문인들에게도 술은 근심을 해소시키는 해우제(解憂劑)였다.
일찍이 조조(曹操, 155~220)도 ‘단가행(短歌行)’에서 “술을 대하면 마땅히 노래하리니, 인생이 그 얼마나 되리오? 비유컨대 아침 이슬과도 같으며, 지난날은 괴로움도 많았어라. 격앙된 마음에 걱정은 잊기 어렵나니, 무엇으로 근심을 풀어버릴까? 오직 술이로세(?酒當歌, 人生幾何? 譬如朝露, 去日苦多. 慨當以慷, ?思?忘. 何以解?? 唯有杜康)”라며 현실의 시름을 술로써 잊으려 했다.(<풍류정신으로 보는 중국문학사>, 최병규, 예문서원)
이백의 위대한 작품 역시 그의 근심 속에서 발효된 것들이다. 잘 알려진 그의 시 몇 편을 보자.
나를 버리고 가버린(棄我去者) 어제의 날들은 붙잡아 둘 수 없고(昨日之日不可留)
내 마음을 심란케 하는(亂我心者) 오늘이란 날은 근심 더욱 많아라(今日之日多煩憂)
만리를 불어온 긴 바람은 가을 기러기를 보내는데(長風萬裏送秋雁)
이런 정경을 앞에 두고 높은 누각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도다(對此可以?高樓)
봉래의 문장 골격 강인한 건안의 문체(蓬萊文章建安骨)
중간에 사조의 문장 맑고도 수려하다(中間小謝又淸發)
탈속한 빼어난 흥취 웅장한 생각은 하늘을 날아(俱懷逸興壯思飛)
푸른 하늘 위의 밝은 달을 보고 싶어했었다(欲上靑天覽日月)
칼을 뽑아 물을 베어도 물은 다시 흘러가고(抽刀斷水水更流)
잔 들어 시름 잊으려 해도 시름은 다시 깊어지네(擧杯消愁愁更愁)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뜻대로 되는 일이 없는 법(人生在世不稱意)
내일 아침은 머리 풀어 일엽편주에 몸을 맡기리(明朝散發弄扁舟)
-먼 조카인 이운을 전별하며(宣州謝?樓餞別校書叔雲)
숙운은 이백의 먼 조카인 이운(李雲)으로, 그는 일찍이 비서성(秘書省) 교서랑(校書郞)을 역임한 바 있다. 그래서 제목에 교서숙운(校書叔雲)이라 한 것이다. 이 시는 이백이 장안을 떠나 천지를 떠돌아다닐 때 지은 것으로, 이운을 전별하는 쓸쓸한 마음과 자신의 불우한 처지가 함께 어우러져 나타나 있다.
“칼을 뽑아 물을 베어도 물은 다시 흘러가고, 잔 들어 시름 잊으려 해도 시름은 다시 깊어지네(抽刀斷水水更流, 擧杯消愁愁更愁)”라는 명구로 유명한 시이기도 하다.
술은 ‘형이상학적 유혹’이자 ‘심미적 충동’
또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장진주(將進酒)’ 에서도 술을 권하는 이유가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근심을 삭이기 위한 것이라 했다.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쏟아져내려 바다로 치달린 후 다시는 돌아가지 못함을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맑은 거울 속 백발 슬퍼하는 높은 집 주인을 아침에 검은 머리 저녁엔 눈같이 희게 변했네
인간으로 태어나 뜻 얻으면 마냥 즐겨야 하니 황금 술잔 빈 채로 달 앞에 놓지 마라
하늘이 재주 내렸으니 필시 쓸 것이요 천금을 탕진해도 돈은 다시 돌아오니
양 삶고 소 잡아 한바탕 즐겨보세
만났으면 한 번에 삼백 잔은 마셔야 하네
잠 선생, 단구님이여! 술잔 올리니 거절하지 마시오
그대들에게 노래 한 곡 바치리니 청컨대 나를 위해 들어 주구려
부귀와 재물도 귀히 여길 만하지 않고 다만 길이 취하고 깨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예로부터 성현들은 모두 쓸쓸히 사라졌지만 오직 술꾼들만은 그 이름을 남기었다네
그 옛날 진사왕 조식(曹植)은 평락관에 잔치할 새 한 말에 만 냥이나 하는 술을 마냥 즐겼노라
주인 인색하단 소리할까 당장 술 사다 그대의 잔 채우리다
오화마(五花馬)나 천금구(千金?)를 아이 시켜 향기로운 술과 바꿔 그대와 함께 마시고 만고의 시름 삭이리라
-장진주(將進酒)
將進酒 李 白
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奔流到海不復回。
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朝如?絲暮成雪。
人生得意須盡歡,莫使金樽空對月。
天生我材必有用,千金散盡還復來。
烹羊宰牛且?樂,會須一?三百杯。
岑夫子,丹丘生,將進酒, 君莫停。
與君歌一曲,請君?我側耳聽。
鐘鼓饌玉不足貴,但願長醉不願醒。
古來聖賢皆寂寞,惟有?者留其名。
陳王昔時宴平樂,?酒十千恣?謔。
主人何?言少錢,徑須沽取對君酌。
五花馬,千金?,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銷萬古愁。
천고의 명시라는 이 한편의 시에 이백의 호방하고 낙천적인 기질이 모두 드러나 있다. 첫 구절부터 시의 엄격한 규격이나 음률에 전혀 개의치 않고, 멋대로 거리낌없이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웅장한 시풍이 독자를 압도한다. 비록 인생의 덧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고자 했다.
‘잠 선생’은 이름이 훈(勛)인 잠징군(岑徵君)이라 하기도 하고 시인인 잠삼(岑參)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단구님’은 그의 절친한 친구인 도사 원단구(元丹丘)를 말한다.
‘오화마(五花馬)’는 털빛이 매우 아름다운 귀한 말이고, ‘천금구(千金?)’는 여우 가죽으로 만든 겉옷으로 값이 천금이라 한다. 하지만 이백은 이런 값비싼 것들조차 친한 친구들과 마음껏 술을 마시기 위해 필요하다면 당장이라도 술과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백이 이처럼 술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는 바로 술이란 부귀와 재물보다 더 소중한 삶의 여유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주고, 사라지지 않는 ‘만고의 시름’을 순식간에 삭여주는, 결코 뿌리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유혹’이자 ‘심미적 충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성현보다 술꾼을 더 높이 평가하는 ‘오만한 기개’까지도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런 정서적 과감성은 다음 시에서는 더더욱 적나라하게 발설되고 있다.
답답한 수심 천만 갈래니 삼백 잔 술을 마셔야 하네
수심 많고 술은 적으나 술잔 드니 수심 사라져
술을 성인이라 한 까닭 알겠고 술 거나하니 마음 절로 열리노라
수양산에 숨은 백이 숙제나 쌀뒤주를 노상 비운 안회나
당대에 즐겨 마시지 못하고서 후세에 허명 남겼자 무엇하랴
게 가재 안주 신선의 선약이요 쌓인 술찌끼 봉래산 옮겨놓은 듯
이제 마냥 좋은 술 마시고서 달과 함께 높은 대 올라 취해보리라
-달 아래 홀로 술 마시며(月下獨酌)
수심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에 술이 성인이란다. 그러니 비록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긴 하였으나 당대에 즐겨 마시지 못한 백이 숙제나 안회(顔回, 공자의 제자)가 어찌 가당키나 하랴!
그런데 뒤에 술안주인 게나 가재를 신선의 선약(金液)이라 하고 쌓인 술찌끼를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산에 비유한 것으로 보아, 이백이 말하는 성인이란 도교에서 말하는 성인 즉 불로장생하는 신선임을 알겠다.
또한 ‘장진주’에서도 그렇고 위 시에서도 한번 마시면 보통 “삼백 잔”은 마셔야 한다고 했으니, 비록 심한 과장이라 하더라도 그의 거침없는 호방함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런 호쾌한 기질 탓에 그는 비록 불우한 삶 속에서 ‘만고의 시름’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낙천적이며 삶을 즐길 줄 아는 풍류정신은 결코 위축되지 않았다.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전하는 다음 명문은 이를 명쾌하게 우리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무릇 천지라는 것은(夫天地者) 만물이 쉬어가는 여관이요(萬物之逆旅)
시간이라는 것은(光陰者) 긴 세월을 거쳐 지나가는 나그네라(百代之過客)
이 덧없는 인생 꿈과 같으니(而浮生若夢) 즐긴다 해도 그 얼마나 되겠소?(爲歡幾何)
옛 사람들이 촛불 들고 밤에도노닌 것은(古人秉燭夜遊) 참으로 이유가 있었구나(良有以也)
하물며 따스한 봄날은(況陽春) 안개 낀 경치로 나를 부르고(召我以煙景)
조물주는(大塊) 나에게 글재주를 빌려 주었음에랴!(假我以文章)
복숭아꽃 오얏꽃 핀 향기로운 정원에 모여(會桃李之芳園) 형제들이 즐거운 놀이를 벌이는데(序天倫之樂事)
여러 아우들은 글 솜씨가 빼어나서(群季俊秀) 모두 혜련(惠連)에 버금가거늘(皆爲惠連)
내 읊은 시만이(吾人詠歌) 홀로 강락(康樂)에게 부끄러울 뿐이로구나(獨慙康樂)
그윽한 봄 경치 감상이 아직 끝나지도 않은데(幽賞未已) 고아(高雅)한 담론은 더더욱 맑아지네(高談轉淸)
화려한 잔치자리 벌여 꽃 사이에 앉아(開瓊筵以坐花) 새 모양의 술잔 주고받으며 달에 취하네(飛羽觴而醉月)
이럴 때 좋은 시 없다면(不有佳作) 무엇으로 고상한 회포를 펼 수 있으리오?(何伸雅懷)
만약 시를 짓지 못한다면(如詩不成) 금곡(金谷)의 고사처럼 벌주(罰酒)를 마시게 하리라(罰依金谷酒數)
-봄날 밤 도리원 연회에서 지은 시문의 서(春夜宴桃李園序)
이백이 어느 봄날 밤 복숭아꽃·오얏꽃이 핀 정원에서 여러 형제와 모여 잔치를 벌이며 서로 시와 부를 짓고 놀았는데, 이때 지은 글을 모아 책으로 만들면서 그 서문으로 쓴 글이다.
인간 삶의 선험적(先驗的) 터전인 드넓은 공간과 끝없는 시간을 여관과 나그네로 비유하여 인생의 짧음을 여관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로 부각한 첫 대목은, 아무도 따를 수 없는 이백다운 장쾌한 기백을 느끼게 하는 만고의 절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중국 화단의 대가 장다첸(張大千, 1899~1983)이 남송(南宋)의 화가 양해(梁楷)의 작품 ‘이백행음도(李白行吟圖)’를 보고 그린 작품이다.
달은 ‘영혼의 거울’이자 ‘확대된 자아’
‘혜련(惠連)’은 육조시대(六朝時代) 남조 송(宋)나라 시인인 사혜련(謝惠連, 397~433)을 가리킨다. 10세 때 글을 지어 그의 족형(族兄)인 사령운(謝靈運)의 인정을 받았다.
‘강락(康樂)’은 바로 혜련의 족형인 사령운(385~433)을 말하며, 강락후(康樂侯)에 봉해졌기에 사강락(謝康樂)이라고도 한다.
산수자연을 좋아해 유람을 하느라 정무를 돌보지 않았으며, 밤낮없이 연회를 즐기다가 면직되었다. 산수시(山水詩)의 한 유파를 열었는데, 언어가 정교하고 화려하며 묘사가 섬세하다는 평을 받았으나, 모반을 일으킨다는 무고를 당해 피살당했다. 사령운은 혜련을 사랑하여, 혜련과 함께 시를 지으면 언제나 좋은 시구를 얻었다고 한다.
‘금곡(金谷)의 고사’란 서진(西晉)의 문인(文人)이자 거부(巨富)인 석숭(石崇, 249~300)과 관련한 이야기다. 그는 낙양(洛陽) 교외의 금곡원(金谷園)에 극도로 호화로운 별장을 짓고 그곳에서 사치를 극한 주연을 베풀곤 하였는데, 그때 시를 짓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벌로 세 말의 술을 마시게 했다고 한다.
한편 이백 하면 술과 함께 떠오르는 것이 바로 ‘달’이다. ‘달’은 술과 마찬가지로 이백의 영원한 연인이고, 이백 시의 원천이자 추동력이었다. 앞서 소개한 네 편의 시에서도 우연의 일치이겠으나 모두 술과 달이 같이 등장한다.(첫 편은 중략된 부분에 달이 등장한다.)
세상에 술을 좋아하는 시인은 많겠지만 술 못지않게 달을 그토록 사랑한 시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마도 이백이 유일무이한 사람 아닐까? 그래서 술에 취해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러 뛰어들어 죽었다는 설화까지 생겨난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백이 그토록 달에 매료된 이유가 무엇일까? 어린 시절 이백은 처음 달을 본 느낌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어렸을 때는 달을 몰라서(小時不識月)
옥으로 된 쟁반이라 불렀네(呼作曰玉盤)
또 아름다운 옥돌 박은 경대가(又疑瑤臺鏡)
푸른 구름 위에 걸려 있나 했네(飛在靑雲端)
-고풍의 명월의 노래(古朗月行)의 일부
달을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옥으로 된 쟁반(玉盤)’ 혹은 ‘옥돌 박은 경대(瑤臺鏡)’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가 본 달과 지금의 달이 다를 리 없겠지만, 아마도 그가 본 달은 지금보다 더 밝고 맑고 고요하지 않았을까?
TV나 라디오, 영화관이 없던 시절 밤이 되면 암흑천지로 변하던 당시, 어두움 한가운데서 높이 떠 세상을 맑고 밝게 비추는 둥근 달은 그의 드높은 이상과 청신(淸新)한 기상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그는 술을 들면서 달을 올려다보며 진지하게 대화하기도 하였다.
푸른 하늘에 달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잠시 잔을 멈추고 한번 묻겠노라
사람들은 밝은 달 오를 수 없지만 달은 오히려 사람들 어디든 따라가네
밝기는 붉은 선궁에 걸려있는 거울 같고 푸른 안개 스러지자 더욱 맑게 빛나네
초저녁 바다 위로 떠오른 그대 보았건만 새벽빛 구름 사이로 사라진 곳을 어찌 알리
옥토끼는 봄 가을 없이 약절구 찧고 항아(姮娥)는 외로이 벗할 임 아무도 없네
우리들은 옛날의 달을 못 보았으나 저 달은 일찍이 옛 사람 비추었으리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흐르는 물 같고 밝은 달 보는 마음 언제나 이와 같네
오직 바라노니 술 마시며 노래 할 때 맑은 달빛 길이길이 황금술잔 비춰주게
-술잔을 들고 달에 묻는다(把酒問月)
대뜸 달의 유래를 묻고 있다. 언제부터 달은 있었는가? 신비스럽고 고마운 존재였기에 그런 물음을 던진 것이리라. 달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예나 지금이나 달을 올려다보던 사람들은 모두 흐르는 물처럼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밝은 달을 보며 느끼는 그 마음은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원한 달 아래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인간들이 술 마시며 노래하는 시간이 그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그 짧은 황홀한 순간에 함께 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부탁하는 것으로 결말짓고 있다.
아름다운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듯 하는 이런 이백의 ‘탐미적 태도’는, 이백이 달의 맑고 밝은 청신한 아름다움에 흠뻑 도취되었음을 드러낸다. 동시에 이백의 영혼이 또한 그와 같이 맑고 밝은 청신함의 소유자라는 것을 명료하게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이백에게 달은 바로 그 자신의 ‘영혼의 거울’이자 ‘확대된 자아’였던 것이다.
달을 애호한 시인의 풍류
고대 중국 신화에 따르면 달에서는 계수나무 아래에서 옥토끼가 불사약을 찧고 있으며, 불로장생하는 아름다운 선녀 항아(姮娥)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항아(姮娥)는 항아(嫦娥) 또는 상아(常娥)라고도 하며, 중국은 2010년까지 유인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려는 계획을 ‘항아공정(嫦娥工程)’ 이라 명명한 것도 이 신화에서 인용한 것이다. 어떻든 이백에게 달은 낭만적 정감의 원천이자 환상적 동경의 근원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고뇌를 다음에서 보듯 달관적인 풍류정신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꽃 아래 한 병의 술을 놓고 친한 이도 없이 홀로 마시네
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니 달과 나와 그림자가 셋이어라
달은 본래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그저 내 몸을 따를 뿐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며 봄날을 맞아 마음껏 즐기네
내가 노래하면 달이 서성대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가 흔들대네
깨어서는 함께 서로 즐기지만(醒時同交歡) 취해서는 각자 서로 흩어지네(醉後各分散)
속세 떠난 맑은 사귐 길이 맺고자(永結無情遊) 아득한 은하에서 만날 날을 기약하네(相期邈雲漢)
-달 아래 홀로 술 마시며(月下獨酌)
온 천지가 꽃 향기로 무르녹는 봄밤, 그 아련한 밤에 홀로 술을 마신다. 이 얼마나 지독히도 쓸쓸한 정경인가? 하지만 이백에게는 그의 영원한 연인인 달이 있어 결코 외롭지 않다. 게다가 달뿐만 아니라, 달에 따라 움직이는 내 그림자도 있지 않은가? 이들과 벗하며 노니는 이백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처절한 고독을 맛본 자만이 비로소 누릴 수 있는 ‘독락(獨樂)의 경지’이리라. 또한 “깨어서는 함께 즐기지만, 취해서는 각자 서로 흩어지네(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란 명구는 우리 평범한 술꾼들의 일상을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가 추구한 세계는 “속세 떠난 맑은 사귐(無情遊)”으로 범용한 주객(酒客)이 쉽게 넘볼 곳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시는 ‘달 아래 홀로 술 마시며(月下獨酌)’라는 제목의 시리즈 4편 가운데 첫 편이다. 이 외에도 제목에 달이 직접 등장하는 시로는 ‘아미산의 달 노래(蛾眉山月歌)’, ‘강 위에 돛 달고 달을 기다리며(?江上待月有懷)’, ‘달을 보며 임을 그리며(關山月)’, ‘달밤에 노자순의 금을 들으며(月夜聽盧子順彈琴)’ 등이 있으며, 그 외 수많은 그의 시에서 달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현실사회가 옹졸하고 혼탁할수록 이백은 어둠 속에서 홀로 높이 떠 맑고 밝게 빛나는 달에 심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달은 청신함과 순수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백은 제 누이동생의 이름을 월원(月圓)이라 지었고, 아들의 이름도 명월노(明月奴), 파려(??, 유리, 예전에는 유리도 옥으로 간주되었음, 달을 의미) 등으로 지었다.
이처럼 달을 사랑한 탓에 그가 술에 취해 강물에 비친 달을 건지려다 죽었다는 이야기가 진실처럼 전해오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당(唐, 618~907) 이후 오대(五代, 907~960)에 활약한 왕정보(王定保, 870~940)의 <당척언(唐?言, 당나라 때의 말을 주워 모음)>에 따르면 “이백이 비단으로 지은 궁중용 도포를 걸치고 채석강에서 노니는데, 오만하고 득의한 모습이 마치 곁에 사람이 없는 듯하였다.
술에 취해서 강물에 뛰어들어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고 말았다(李白着宮錦袍, 遊采石江中, 傲然自得, 傍若無人. 因醉入水中捉月而死)”고 한다.
이 기록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만큼 달을 지극히 애호한 이백의 탈속적인 풍류 기질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월간중앙
2013.03
月下獨酌 월하독작 : 달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
이백(李白)
其一
花間一壺酒, 꽃나무 사이에서 한 병의 술을,
獨酌無相親, 홀로 따르네 아무도 없이,
擧杯邀明月, 잔 들고 밝은 달을 맞으니,
對影成三人, 그림자와 나와 달이 셋이 되었네.
月旣不解飮, 달은 술 마실 줄을 모르고,
影徒隨我身, 그림자는 나를 따르기만 하네.
暫伴月將影,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 함께 있으니,
行樂須及春, 봄이 가기 전에 즐겨야 하지.
我歌月徘徊, 내가 노래하면 달은 거닐고,
我舞影零亂,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따라 춤추네.
醒時同交歡, 함께 즐거이 술을 마시고,
醉後各分散, 취하면 각자 헤어지는 거.
永結無情遊, 무정한 교유를 길이 맺었으니,
相期邈雲漢, 다음엔 저 은하에서 우리 만나세.
其二
天若不愛酒 , 하늘이 술을 사랑치 않았다면,
酒星不在天, 주성이 하늘에 있지 않을 거고,,
地若不愛酒, 땅이 술을 사랑치 않았다면,
地應無酒泉, 땅에 주천이 없었을 거야.
天地旣愛酒, 하늘과 땅도 술을 사랑했으니,
愛酒不愧天, 내가 술 사랑하는 건 부끄러울 게 없지.
已聞淸比聖, 옛말에, 청주는 성인과 같고,
復道濁如賢, 탁주는 현인과 같다고 하였네.
賢聖旣已飮, 현인과 성인을 이미 들이켰으니 ,
何必求神仙, 굳이 신선을 찾을 거 없지.
三杯通大道, 석 잔이면 대도에 통할 수 있고,
一斗合自然, 한 말이면 자연과 하나되는 거라.
但得酒中趣, 술 마시는 즐거움 홀로 지닐 뿐,
勿爲醒者傳, 깨어 있는 자들에게 전할 거 없네.
其三
三月咸陽城, 춘삼월 함양성은,
千花晝如錦, 온갖 꽃이 비단을 펴 놓은 듯.
誰能春獨愁, 뉘라서 봄날 수심 떨칠 수 있으랴.
對此徑須飮, 이럴 땐 술을 마시는게 최고지.
窮通與修短, 곤궁함 영달함과 수명의 장단은
造化夙所稟, 태어날때 이미 다 정해진 거야.
一樽齊死生, 한 통 술에 삶과 죽음 같아보이니,
萬事固難審, 세상 일 구절구절 알 거 뭐 있나.
醉後失天地, 취하면 세상천지 다 잊어버리고,
兀然就孤枕, 홀로 베개 베고 잠이나 자는 거.
不知有吾身, 내 몸이 있음도 알지 못하니,
此樂最爲甚, 이게 바로 최고의 즐거움이야.
其四
窮愁千萬端, 천갈래 만갈래 이는 수심에,
美酒三百杯, 술 삼백잔을 마셔볼거나.
愁多酒雖少, 수심은 많고 술은 적지만,
酒傾愁不來, 마신 뒤엔 수심이 사라졌다네.
所以知酒聖, 아, 이래서 옛날 주성이
酒酊心自開, 얼근히 취하면 마음이 트였었구나.
辭粟臥首陽, 백이는 수양 골짝에서 살다 죽었고,
屢空飢顔回, 청렴하단 안회는 늘 배가 고팠지.
當代不樂飮, 당대에 술이나 즐길 일이지,
虛名安用哉, 이름 그것 부질없이 남겨 무엇해.
蟹蠣卽金液, 게와 조개 안주는 신선약이고,
糟丘是蓬萊, 술 지게미 언덕은 곧 봉래산이라.
且須飮美酒, 좋은 술 실컷 퍼 마시고서,
乘月醉高臺, 달밤에 누대에서 취해 볼거나.
................
상기 기사의 일부분이다.
"술에 취해서 강물에 뛰어들어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고 말았다
(李白着宮錦袍, 遊采石江中, 傲然自得, 傍若無人. 因醉入水中捉月而死)”고 한다. "
괄호의 문장을 전부 해석했다.
"이백이 궁금포(宮錦袍)를 입고 채석강(采石江)변에서 놀며 오만하게 잘난척하고 뽑내고 방약무인해서 달을 잡는다고 물에 들어가
빠져 죽었다."
상당히 악평에 가깝다. 좀 의아해서 이 문장 출처를 찾아봤다.
李白??死的? 이백이 어떻게 죽었나?
여러가지 "설(說)"이 많은데 술먹어서 병들어 죽었다는 설이 가장 많고 설득력이 있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얘기는 옛날부터 널리 퍼진 얘기라하고, 일부러 억지 이야기를 만들어서 고인을 싫어하게하려는 의도로 만들어낸 말이
라는 주장도 보인다.
윗글은 "五代時王定保在《唐?言》中雲" 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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