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전선으로 떠나 버린 님...
님은 먼곳에
?
지금의 6070 세대들의..혼을 빼놨던 김추자
김추자는 1951년 춘천에서 태여났다
그렇다면, 추자도 벌써 내년이면 70?
지구야 ~ 좀, 천천히 돌자 ~ !
김추자 '님은 먼 곳에' (1970)
가히, 센세이션이라고 할 만했다.
꽉 달라붙는 판탈롱 바지와 뇌쇄적인 눈빛. 그리고
그보다 더 요염한 몸짓. “노래는 얌전하게 부르는 것”이라는
명제가 격률이었던 시기에
김추자의 등장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후 그녀는 정말 ‘사건’들을 몰고 다녔는데,
그런 이미지로 각인된 데는 무대 내외에서 벌어졌던 해프닝들...
(이를테면, 부산 리사이틀 당시에 -
김세레나와 벌인 헤게모니 전투나 구혼을 거절당한 매니저의 보복 폭행 사건,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감행해야 했던 여러 차례의 성형수술,
대마초 파동, 간첩설, 노팬티설) 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김추자에 대한 평가는
좀 더 핵심부를 향해 모여들 필요가 있다.
그녀의 대표곡 ‘님은 먼 곳에’를 이 자리에 꺼내든 이유다.
‘님은 먼 곳에’는 1969년 11월 첫 방영된 동양방송(TBC)의
주말연속극 주제곡으로 먼저 공개되었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신중현 컴필레이션 음반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노래다.
공교롭게도 노래를 처음 부탁받은 이는 김추자가 아니고
당대 최고의 스타 패티김이었다.
그러나 스탠더드 팝 스타일을 지향했던 패티김은
당연히 방송사의 제의를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에게 잘된 선택이었다고 본다).
“주인은 따로 있다”는 속설처럼,
그렇게 노래는 김추자의 품으로 돌아갔고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 호응했다.
신중현이 곡을 쓴(작사 역시 신중현이 했다고 알려졌으나,
2006년 법원은 저작권 공방 끝에 드라마작가 유호의 손을 들어주었다)
드라마틱한 구조의 소울 클래식 ‘님은 먼 곳에’는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었고,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로 열심히 바람몰이 중이던
신예가수 김추자는 대중들에게 잊히지 않을 아이콘이 됐다.
기억속에 살아있는
70년대 유행어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