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1호 국회의원 조명철 씨
“눈물 많지만, 북한의 협박은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평양에 살던 엘리트 청년, 아버지는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 어머니는 교수였다.
김일성대학 교수가 되어 1993년 중국에
교환교수 생활 때….
노동신문 김일성 신년사를 외우는 체제에
35세 청년의 피는 거꾸로 끓어올랐다.
외국학생들 앞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고 매주 분열행진을 시키는 정권,
누가 도망쳤을까 봐 오후 6시면 온 방을
이 잡듯 헤집고 돌아다니는 집단.
화가 치밀어서 충동적으로 국제
열차에 몸을 던졌다.
‘홍콩’이란 방송이 나왔을 때
몸이 떨리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이래도 되나. 부모 형제 처자식은 어쩌지.
이렇게 영원히 이별하는 것인가….’
온갖 상념에 ‘아 김일성, 김정일 정권에
강펀치를... 하는 생각에 속이 후련했다.
조명철(54)의 탈북 스토리다.
그는 탈북자 위로 행사에서 축사를 하던 중
눈물을 흘렸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새누리당 19대 국회에 입성했고,.
‘탈북자 1호’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 젊은이의 통일 의식이 약해지는
것이 큰 문제라고 했다.
20대의 33.4%가 ‘통일되지 않을 것’
‘귀찮은데 뭐 하러 통일하나’
‘가난한 북한과 통일할 필요가 있나’
라고 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그러나 통일이 되면 큰 이익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나에게 인격 살인을 하고 내
신변에 위해를 가하겠다는 위협에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겠다는 나의 의지는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가족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20년 간
수절 했는데 만나는 벗이 생겼다.
―1983년 김일성종합대 졸업, 교수
―1994년 귀순 경제정책연구원
―2011년 통일 교육원장,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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