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金正恩)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 중인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용해(崔龍海)가 지금 중국의 시진풍(習近平) 국가주석 예방을 성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의 언론들은 최용해가 23일 중국공산당의 권력서열 5위인 류윈산(劉云山)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련 각국과 대화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같은 최용해의 ‘발언’은 시진풍 국가주석 예방을 성사시키기 위한 그의 고심(苦心)의 ‘세레나데’로 들린다.
그런데, 우리의 입장에서는 조심할 일이 있다. 최용해가 “대화를 해 나가겠다”는 구름잡는 식의 말을 했다고 허겁지겁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먼저 분명하게 따질 일들이 있다. 우선 그가 말하는 ‘대화’가 과연 무슨 ‘대화’인지가 보다 명백해 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건의’”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도 따져 보아야 한다. 우리는 과거 “우리의 목표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김정일(金正日)의 말장난에 놀아나서 10년의 세월을 허송세월(虛送歲月)하면서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게 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자금까지 지원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번의 최용해의 베이징 방문은 북한이 그 동안 중국의 강력한 저지 노력을 무시하고 지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고 중국의 ‘개혁▪개방’ 권유를 묵살하면서 중국이 권유하는 ‘전략적 소통(疏通)’을 외면했을 뿐 아니라 특히 최근 북한의 ‘군인’들이 중국의 어선을 납치하여 어부들을 린치하는 것은 고사하고 거액의 ‘석방 대가’까지 요구한 데 대하여 중국 조야(朝野)의 참았던 분노가 용암(熔岩)처럼 분출되는 것을 보고 놀란 나머지 이를 달래기 위하여 부랴부랴 베이징으로 달려간 ‘원 포인트’ 행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 수도 없이 반복되었던 것처럼 급한 나머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우선 쏟아 놓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의 허언(虛言)일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에도 또 북한의 상투적인 ‘허언’에 농락되어 북한이 좌지우지(左之右之)하는 사이비성 ‘대화’에 말려들어 갔다가 일방적으로 호주머니만 털리고 일어나는 과거의 사례를 또 한 차례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최용해의 ‘대화’ 발언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를 지켜볼 일이다. 중국은 2011년12월 사망하기에 앞서 빈번하게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에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입을 빌어 ① 중-북 양국간의 전략적 소통, ② 핵무기 개발을 둘러싼 국제사회와의 갈등 해소, ③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대남 군사도발 억제, ④ ‘중국식 개혁▪개방’의 수용 등을 “고장난 레코드 판”처럼 거듭 반복하여 요구한 데 대해 김정일이 즉석에서는 “동의한다”고 해놓고 귀국한 뒤에는 번번이 식언(食言)해 버린 사실을 잊지 않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특히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하여 분명하게 들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은 시진풍 국가주석이 이번에 최용해를 만날 것이냐의 여부이고 또 그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시 주석이 무슨 말을 했느냐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과거의 예를 보면, 중국과 북한 간에 ‘정상(頂上)’급 접촉이 있을 경우 북측의 언론은 그 내용을 왜곡하거나 선별적으로 편집하여 보도하는 대신 중국의 <신화사(新華社) 통신>은 그 내용을 충실하게 보도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왔었다. 따라서, 이번의 경우에도 만약 최용해의 시진풍 예방이 성사될 경우 우리는 중국측 <신화사 통신>의 보도를 주의 깊게 모니터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변화하는 한-중간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그리고 최용해가 베이징에 와 있는 동안에 중국 정부가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의 6월 중 중국 방문 예정을 공표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만약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시진풍 주석과 최용해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에 관하여 중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충실하게 알려 줄 것으로 기대할 만 하기도 하다.
이와 같은 사정을 염두에 둘 때 박근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오는 6월말에 있을 박 대통령의 방중 준비를 잘 준비하는 것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분명하게 정리하여 이를 중국 지도부에 정확하게 설명하여 양해를 구함으로써 앞으로 중국이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북한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함께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애매모호(曖昧模糊)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지대화’ 주장에 역용(逆用) 당하여 오히려 북한의 ‘핵무장’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한 기왕지사(旣往之事)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명실 공히 ‘북한의 비핵화’를 확고하게 추진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남북관계의 개선과 해결을 중재하는 데 협력하도록 설득하는 데 만전을 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컨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무엇보다도 먼저 말을 아끼는 데로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박근혜 정부는 그 동안 남북관계를 본질적으로 왜곡시키는 원인이 되었던 ‘6.15 남북공동선언 체제’로부터 확실하게 벗어나서 남북관계의 틀과 판을 완전히 새로이 짜는 전기(轉機)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박근혜 정부는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등정(登程)에 앞서서 앞으로 전개되어야 할 남북관계의 틀을 새로이 짜는 한편 이를 확실하게 남측이 주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합리적인 ‘조건’들을 마련하고 이를 중국 지도부에 설명하여 이해를 구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하고 동시에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중▪장기 전략에 관해서도 한▪중 양국간에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으로 말한다면, 이번 최용해의 중국방문은 북한의 입장에서 북한이 바라는 성과가 생산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번에는 다시 농락되지 않겠다”는 중국의 입장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미 최용해의 방중 동정에 관하여 크게 차이가 나는 중국과 북한의 언론보도 내용들이 그것을 시사해 주고 있지만, 북한은 최용해의 방중 성과를 북한의 정치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조작, 변질시켜서 활용할 것이고 그 결과로 중국과 북한간의 관계에는 모순과 갈등이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용해의 이번 방중 행보에 대하여 우리는 성급한 속단(速斷)이나 희망적인 추측을 최대한 억제하고 치밀하게 내용을 파악하고 그 의미를 분석, 판단하여 신중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 체제는 한계에 이르러서 말기(末期) 증상의 초기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미 반전(反轉)의 가능성은 소진(消盡)되었다고 보여 진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북한 체제의 소프트 랜딩(Soft Landing), 즉 연착륙(軟着陸)이 아니라 하드 랜딩(Hard Landing), 즉 경착륙(硬着陸)에 대한 대비를 착실하게 시작할 때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북한을 다루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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