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교훈들

아버지의 마지막 외출

리멘시타 2012. 12. 23. 10:55

 

 

 

 

 

 

 

 

 

 

 

 

 

                         

 


아버지의 마지막 외출 
 

나는 늘 술에 취해 돌아오는 아버지가 싫어서
마침내 집을 나오고야 말았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얘길 듣고 싶지 않아
학교 생활도 충실히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주정을 부리다
파출소까지 끌려가신 아버지를 보고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며칠 생활하던 나는
학교로 찾아오신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 소식에 내가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자,
어머니는 몸조심하라는 당부만 하신 채
하얀 봉투 하나를 내밀고 돌아가셨다.
봉투 안에는 손때묻은 만원짜리 열 장과
이런 쪽지가 들어 있었다.
"미안하다. 아빠가 잘못했다."

다음날 수업이 끝난 뒤
내 발길이 닿은 곳은 아버지의 병실이었다.
나는 문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안을 살폈다.

눈에 띄게 수척해지신 아버지를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그 동안 쌓였던 미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심각한 심장병에 당뇨까지 겹쳐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나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고
또 한편으론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자식보다 담배를 좋아하고
아내보다 술을 사랑하고,
가족보다 술친구를 더 필요로 하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만을
보여 주시던 아버지에게 차라리
이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나였으니까.

아버지의 병원 생활이 한 달이 다 되어갈 무렵
나는 돈 때문에 퇴원 수속을
준비중이라는 말을 듣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휴학계를 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배달하고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하며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얼마 뒤 나는 뜻밖의 사고를 당했다.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돌리다
현기증이 일어나 나도 모르게
핸들을 차도 쪽으로 꺾었는데
그만 달려오는 자동차에 치인 것이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나와 같은 환자복을 입고
내 곁을 지키고 계신 아버지를 보는 순간,
나는 내 손을 잡고 있던 아버지의 손을 뿌리쳤다.

따뜻함이 느껴졌지만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나 때문에 병이 악화되신 아버지를 위해
정말 돈을 벌고 싶었는데...

그날 아버지는 퇴원을 하셨다.
그리고 나도 병원비 때문에 곧이어 퇴원하고
통원치료를 받으며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집에는 여전히 들어가지 않은 채.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가
내가 일하는 식당에 찾아와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너, 휴학했니?"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위해 내가 원한 일이었고
한 번도 그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왠지 모를 피해의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식사가 끝나고 한참 침묵이 흘렀다.

"저요, 남들처럼 아빠한테 애교도 부리고
성적 오르면 칭찬 받고,
잘못하면 야단도 맞고 싶었어요.
"18년동안 참아 왔던 눈물이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하더니
도무지 그칠 줄 몰랐다.

"너한테 용서해 달라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너무 고맙다."
내 생애 처음으로 아버지 품에 안겨 울면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버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식이 되고 말았다.
그 뒤 아버지는 병이 더 나빠져
다시 입원하셨다.
매일  야위어만 가는 아버지가 안쓰러워
가슴 졸이며 수술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드디어 수술 받는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날따라 자꾸 눈물을 보이시던 아버지는
어머니께 몇번이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시더니
나와 동생들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초등학생 막내를 안고는 서럽게 우셨다.

"우리 막둥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아빠가 언제까지나 지켜줄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말고 엄마 말씀 잘 듣고...
알았지...? 약속하자..!"
막내 동생은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아빠가 왜 저렇게 나약한 말씀을 하실까."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잠시 발코니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님 달님에게 수술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막내가 울면서 뛰어왔다.

"누나, 아빠 돌아가셨어!"
하루만, 아니 열일곱 시간만 참으시지...
정신없이 병실로 뛰어들어간 나는
이제껏 한번도 따뜻하게 잡아 드린 적 없던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빠, 아빠만 사랑한다는 말 하고
이렇게 눈감으시면 어떡해요.
나도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꼭 말하려 했는데..."
아버지를 그렇게 떠나 보내고 며칠 뒤
어머니 통장에 큰돈이 들어와 있는 사실을 알았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아버지가
고집을 피우며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외출하시던 일이 떠올랐다.
그 돈이면 진작에 수술 받으실 수 있었을텐데...
아버지는 당신이 가실 날을 미리 알고,
남은 가족을 위해 조금씩 몰래 모아둔
그 돈을 남겨 주신 것이었다.

통장에 박혀 있는 아버지 이름 석자를 보며
나는 목이 메여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다.

나는 1년만에 복학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고
지금은 가구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맏딸로서 아버지를 대신해
막내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께 미처 말하지 못한
사랑의 표현인 걸 아버지도 알고 계시겠지.

아  버  지 .....!


-어느 소녀의 실화 글-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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