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인물

고엽제 & DMZ

리멘시타 2019. 4. 11. 22:19




에이전트 오렌지,


한국에 어떻게 반입되고 어떻게 살포되었을까?


( 2011. 5 22 17:00 언론 매체 게재)





경북 칠곡의 캠프캐럴에서 1978년에 맹독성 고엽제 250드럼을 영내에 매몰 처리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이런 고엽제가 언제 국내에 들어와 어떻게 사용되었고 또 어떤과정을 거쳐


캠프캐럴로 이송 보관되다가 이처럼 부당하게 처리되었는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연관된 자료를 간추려 소개한다.


 


  고엽제의 국내 반입과 사용에 관해 비교적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는 2006년 12월


 앨빈 영(Alvin L. Young)박사가 윌리엄 밴 후틴(William Van Houten) 미국방차관실에 제출한 85쪽짜리 보고서다.


 


제목이 ‘미국방부의 전술용 제초제 실험․ 영향평가․ 저장 프로그램의 진행과정’(The History of the U.S. Department


of Defence Programs for the Testing, Evaluation, and Storage of Tactical Herbicides)인 이 보고서에는


2006년초 퇴역군인관리청이 “에이전트 오렌지를 포함한 전술용 제초제를 베트남 이외 지역에서 사용한 위치와


날짜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공식 문서”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국방부의 담당 차관이 앨빈 영 박사에게 의뢰하고


그가 관련 문서를 모두 취합, 분석, 정리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퇴역군인관리청은 미군이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그런 전술용 제초제의 사용 지역과 날짜도 함께 통보해주도록


요청해 이런 요청이 주한미군의 고엽제 피해 판정의 효율성문제와도 연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고서는 우선 고엽제의 개발 동기와 함께 고엽제라는 용어를 명확하게 규정하는데 적잖이 신경을 쓰고 있다.


미군은 1943년 시카고대학과 용역 계약을 맺어 적국의 농작물을 못쓰게 만드는 2,4-D와 2,4,5-T같은


유기화합물을 만들어 군사적 용도로 활용하고자 했고  1945년초에는 일부 실험에 성공했지만 곧 종전이 되면서


이 계획을 중단했다.


 


  5년뒤 한국전이 벌어지자 1952년 미육군성 산하 화학전단 생물학연구소에서 한국전 활용을 전제로


다양한 군사용 제초제와 살포 장비의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전술용 제초제는 한국전에서 활용되지 않고 제초제와 살포 장비가 다같이 괌에 보관되다가


한국전이 끝난 뒤 제초제는 유타주, 살포장비는 메릴랜드로 이송되었다가 1961년부터 베트남에서


실험․개발 단계를 거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미군은 1961년부터 1965년까지의 실험․개발 과정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1965년 3월29일부터


1971년 1월7일까지 5년 9개월여동안 “전투작전용”(combat operations),


이른바 전술용 제초제를 베트남 전역에 광범하게 살포했다.



 


  베트남에서 감행된 이런 작전 활용기(the Operational Phase)중인 1968, 이런 전술용 제초제가


베트남 이외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한국 비무장지대 주변에 뿌려졌다.


한국전중에 본격적으로 개발된 전술용 제초제가 실험이나 평가용이 아닌, 작전용으로 베트남과 함께


한국에만 살포되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갖가지 의문도 꼬리를 문다. 왜 한국전중에도 사용되지 않던 전술용 제초제가 휴전중인 이 시기에


살포되었는지, 또 미군과 한국군중 어느쪽이 이런 살포문제 결정이나 실행의 주도적 역할을 했는지,


어느 정도를 살포했고 살포된 전술적 제초제의 형태는 어떤 것인지,


살포된 이후 잔여량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은 잠시 뒤로 미루고 전술용 제초제 자체에 대한


이 보고서의 정의를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미군이 사용한 제초제가 누구나 농약판매점에 살 수 있는 일반 제초제와 다름은 물론이다.


전술용 제초제는 미국방부가 전투작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과 면밀한 영향 평가를 거쳐


개발한 특수 제초제다.


베트남에서는 정글안 울창한 초목의 잎새를 빠른 시간안에 말려죽이는 화학적 수단으로


이런 제초제가 활용되면서 고엽제라는 명칭이 등장하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코드명 랜치핸드(Ranch Hand)로 불린 이런 고엽제 공중 살포작전은


1962년 1월7일부터 1971년 1월7일까지 정확히 9년간 지속되었다.


 


  1965년초까지의 실험․평가 시기가 포함된 기간이다.


베트남에서 실험․평가를 위해 초기에 활용된 전술용 제초제는 속칭 퍼플(Purple)과


2,4,5-T 계열의 핑크와 그린, 블루의 분말 형태인데, 이런 제초제가 담긴 드럼통의 중심부는


띠 모양의 10인치 폭 라벨이 붙어 있었다.


나중에는 블루의 액체 형태와 화이트, 그리고 2,4-D와 2,4,5-T의 50대 50 조합인 오렌지가 등장했고


이런 제초제가 담긴 드럼통의 가운데에는 폭 3인치의 띠 형태 라벨이 둘러쳐져 있었다.


 


  이중 제일 고약한 것이 다이옥신을 함유한 오렌지로서 미국방부는 1970년 4월15일 동남아지역


군사작전에서 에이전트 오렌지(Herbicide Orange)의 사용을 전면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후 베트남에 남아있던 55갤런들이 오렌지 2만5,200드럼이 1972년 4월 중순


태평양 중심부의 존스턴섬으로 모두 이송되어 보관되다가 5년뒤인 1977년 4월 미국 환경부의


해안 소각처리방식에 대한 최종 허가를 받은 뒤에 처리되기 시작했다.


 


  미국방차관실에 제출된 이 보고서 51-53쪽에는 전술용 제초제 살포지역으로 한국 DMZ 인접지역을 


특정하고,  살포 시기와 한미간의 협의과정, 살포 방식, 살포 분량 등에 관한 내용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살포된 제초제는 전술용인 오렌지와 블루, 그리고 일반 제초제인 모누론 UROX 22였다.


살포 시기는 1968320일부터 그해 71일까지였다.


오렌지DMZ 아래쪽 민통선 지역 일대 6,966에이커에 380드럼(2900갤론)이 살포되었고


블루는 액체 형태로 11,458에이커에, 625드럼(34,375갤론)이 뿌려졌다. 문제는 오렌지였다.


 


미국방부는 1969년 11월부터 베트남 작전지역에 대한 오렌지(고엽제) 살포를 규제했다.


그리고 5개월 뒤인 19704월 중순부터 오렌지 사용을 전면 중단시켰다.


그만큼 오렌지의 인체 위해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쟁을 벌이던 베트남에서조차 사용을 제한하거나 전면 중단한 오렌지를, 휴전 상태의 한반도에서


그로부터 불과 한두해전인 1968년에 대량 살포한 것은 좀체로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1968년초 푸에블로호 피납사건 발생으로 이 시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가 전례없이


고조되었던 점이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은 있다.


 


  미군당국은 오렌지를 포함한 전술용 제초제의 DMZ 살포작업에 미군은 단 한명도 참여시키지 않았다.


전술용 제초제의 DMZ 살포를 결정하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1967년 5월부터 관련 협의가 진행되다가 그해 9월20일 양국 정부는 DMZ 남쪽과 민통선 일대에


전술용 제초제를 살포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고엽제로 북한군의 대남 침투활동을 돕는 울창한 수풀을


제거하겠다는 것이었다.


주한미군사령관에게 고엽제를 살포할 수 있는 최종 권한이 주어진 것은 196834일이었고


320일에는 첫 제초제인 모누론과 관련 장비가 한국에 도착했다.


 


  다시 4월15일경에는 전술용 제초제인 오렌지와 블루가 DMZ 인근 전진기지에 도착해 살포 준비에 들어갔다.


이때 들여온 오렌지나 블루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살포한 뒤 잔여량은 어느곳으로 이송, 보관, 처리되었는지가


현재의 칠곡 캠프캐럴 고엽제 매몰처리 폭로사건과 연관해서 관심사로 떠오르는 문제다.


 DMZ 일대에 살포된 오렌지의 양이 380드럼쯤 된다는 사실은 앞서 밝힌 바 있지만, 국내로 들어온 오렌지가


어디에서, 얼마만큼 들어왔는지가 밝혀지지 않기 때문에 잔여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밝혀내는 일도 어렵다.


 이때 상당량이 남아 있었다면 다음해인 1969년부터 오렌지 사용 규제조치가 내려지고 다시 1970년에


전면적인 사용 금지조치가 떨어진 점에 비춰보면 베트남의 경우처럼 존스턴섬으로 이송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문서나 기록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존스턴섬으로 이송 보관된 에이전트 오렌지는 앞서 밝힌 것처럼 환경부의 허가를 받아 1977년부터


소각 처리되기 시작해 10여년의 복잡한 작업끝에 1989년 2월에야 처리 정화작업을 매듭지었다.


그러나 캠프캐럴에 보관된 오렌지가 1968년 DMZ 살포 잔여량을 옮겨온 것이고


그것이 이번 제대장병들의 폭로처럼 1978년에 매몰 처리된 것이라면 이는 베트남 잔여 오렌지의


처리방식과는전혀 다른, 무책임하고 불법적인 처리방법이라 하겠다.


 


복사 http://blog.naver.com/md4473/50111931002

원본 게시 블로그






 

사진 자료


▲ 미군 항공 6소대 헬리콥터가 춘천 북쪽 DMZ 지대에서 고엽제를 뿌리고 있다.

 (사진=강원도민일보, 짐 힐튼)



▲ 지난 1968년 미군 항공 6소대가 춘천 캠프페이지 내에서 고엽제를 헬기에 싣고 있다.

 (사진=강원도민일보, 짐 힐튼)



▲ 미군 항공 6소대 헬리콥터가 춘천 북쪽 DMZ 지대에서 고엽제를 뿌리고 있다.

(사진=강원도민일보, 짐 힐튼)



▲ 지난 1968년 미군 항공 6소대가 춘천 캠프페이지 내에서 고엽제를 헬기에 싣고 있다.

 (사진=강원도민, 짐 힐튼)


▲ 캠프페이지 미군들이 방호복도 없이 고엽제와 제초제를 묻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강원도민일보, 댈러스 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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