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 풍물

노인과 여인 - 걸작감상

리멘시타 2015. 2. 22. 23:41

 

 

 

                                                              노인과 여인

( Cimon & Pero )

 

옛날 아주 먼 옛날에 로마에 Cimon이라는 한 홀아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페로(Pero)라는 외동 딸이 있었습니다. 예쁘게 키운 이 딸은 시집을 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Cimon은 한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하게 됐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죽이는 형벌 방법도 다양했나 봅니다. 옥에 가둬 굶겨 죽이는 방법으로 Cimon을 사형시키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면회는 허용되지만 음식물 반입은 물론 금지됩니다.

Cimon은 탈수와 영양실조로 서서히 죽어갑니다. 딸이 면회를 왔습니다. 빈 손으로 들어온 딸은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가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까웠습니다.

마침 딸은 아기를 출산해 젖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딸은 자기의 가슴을 열어 아버지에게 간수 몰래 젖을 물렸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에 감동되어 노인은 나중에 석방 되었다고 합니다.

 

이상의 말은 B.C 3세기에 살았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의 저작 중 한곳에 실려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당연히 화가들의 좋은 소재가 충분히 되었을 것이고 이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유럽에 크게 유행하였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제목이 “Roman Charity”이고 부제는 Cimon(Simon) & Pero입니다.

루벤스(Rubens) 또한 이런 소재로 그림을 그렸는데요, 프랑스 화가인 쟝 밥티스트 글뤼즈(Jean-Baptiste Greuze)는 루벤스의 그림을 이용하여 다른 방식으로 화폭에 담기도 했습니다.

 

Sebald Beham

Cimon and Pero (1540 drawing, 40x24cm; 390x239pix, 57kb),

Jean Baptiste Greuze의 작품.

네오클레시즘을 구현한 프랑스 화가

                                         딸의 얼굴에는 제한된 시간에 급히 아버지에게 젖을 먹이려는 

                                    조급한 표정이 표현되어 있고 노인은 굶은자 답게 몸이 메말라 있으

                                                  대체로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그림으로 보인다.

                                      

 루부르 박물관의 노인과 여인

 

작가 미상 18세기 이탈리아 화가의 그림.  

제목은 역시 " Cimon and Pero"

                                   아버지의 삶에의 갈망과 자비로운 딸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그림.

 

Murillo(무릴료)의 "Caritas Romana"

                                몇년전 경매에서 스케치로는 상당한 고가를 기록해 화제가 되었던 이 그림은 

                               스케치로 남았지만, 완성했을 경우 가장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Pasinelli의 Caritas Romana 라는 작품.

                                     이 그림 역시 초조한 기색의 여인과 오로지 살고 보자는 노인의 삶에의 욕구, 

                                    그리고 창살로 몰래 그 장면을 훔쳐보는 간수의 양가감정등이 잘 나타나 있다.

루벤스의 작품

 

Peter Paul Rubens (1577-1640),

"Roman Charity", 1612, oil on canvas transferred from panel,

루벤스의 작품 "노인과 여인"

 

 Peter Paul Rubens (1577-1640) 

                                                                       독일 베스트팔렌 지겐 출생. 

 

아버지가 정치적인 이유로 지겐으로 피해 있을 때 그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자 10세 때 가족과 함께 고향인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와 라틴어 학교에 다녔다. 3년 뒤 14세에 랄랭 백작부인의 시동이 되어 귀족사회의 습속을 익혔고, 화가가 될 뜻을 세웠다.

15세 때 A.노르트(1562∼1641), O.베니우스(1556∼1629) 등에게 그림을 배운 뒤 21세 때인 1598년 당당히 안트베르펜 화가조합에 등록되었고, 23세 때인 1600년에 이탈리아 유학의 꿈을 실현시켰다.

 

이탈리아에 머무는 8년 동안 베네치아 ·로마 등지에서 고대미술과 르네상스의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당시 이탈리아의 바로크화가인 M.카라바조와 카라치파(派)의 영향을 받아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차차 명성을 얻는 한편, 만토바공(公)의 인정을 받아 그의 사절로서 외교적 사명을 띠고 에스파냐로 여행하였다.

1608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기별을 받고 고향에 왔을 때 이미 어머니가 운명한 뒤였으나, 그는 플랑드르 제일의 화가로서 고향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1609년 플랑드르 총독 알브레흐트 대공의 궁정화가가 되었고, 10월에는 명문 집안의 딸 이사벨라 브란트와 결혼하였다.

그 뒤로는 날로 높아가는 명성과 많은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루벤스 특유의 화려하고 장대한 예술을 펼쳐나갔다.

역사화 ·종교화를 비롯하여 많은 종류의 제재를 작품화하였는데, 파리의 뤽상부르궁전의 21면으로 이루어진 연작 대벽화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는 그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루벤스 예술의 모든 특질을 담고 있으며 바로크회화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현란한 그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며 밝게 타오르는 듯한 색채와 웅대한 구도가 어울려 생기가 넘친다.

외교관으로서도 활약하였으며 원만하고 따뜻한 인품으로 말미암아 유럽 각국 왕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1626년 아내 이사벨라가 죽은 후, 1630년 16세의 엘레나 푸르망과 재혼하였다. 1640년 팔의 통풍이 심장에까지 번져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죽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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