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기구하고 얄긋은 운명이
세상에 딸도 되고 누이동생도 되고
마누라도 되는일이 있을까-?
아버지도 되고 오빠도 되고
서방도 되는 일이 있을까-?
6.25 이후 한동안 <眞相>이란 잡지가
발행 된적이 있었다.
그 잡지는 실제 있었던
사건. 사고를 발굴 보도하는
흥미 진진한 잡지였다.
그 잡지에서 읽었던 기막힌 사연이
지금도 내 머리속에 아득히 남아 있는데
기억을 더듬어 재생해 본다.
전라도 어딘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어느 고을에 20여살 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사는 과부가 있었다.
그 동네엔 서울서 낙향한 지체높은 대감이
살고 있었고, 그 대감댁엔 낭낭18세
매화꽃 보다도 아름다운 손녀딸이 있었다.
과부의 아들 수동이가
대감댁 손녀를 한번 본후 상사병에 걸렸다.
증세가 날로 심해가나 백약이 무효.
상사병은 오직 그리워 하는 여인을 품어야만
고칠수 있다는 것을 수동의 어미도 잘 알고 있었지만
워낙 지체 높은 집안이라 언감생심
말도 부칠수 없는 처지.
그러던 어느날, 수동어미가 앓고 있는 아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수동아 걱정마라.
내가 대감댁 아가씨한테 네 사정을
얘기하고 사람 하나 살려 달라고 애원 했더니
고맙게도 네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하는구나.
오는 그믐날 밤 자정쯤에 몰래 들어 올터이니
이불 쓰고 눈 꼭 감고 누워 있어야 한단다.
아가씨를 볼 생각도 말고, 말도 하지 말고
조용히 일만 치르기로 했단다.
너는 그 약속을 지킬수 있겠느냐?"
드디어 그믐날 밤 자정께 불꺼진 방안에서
수동이는 이불을 쓰고 숨소리도 죽인체
그리운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에 깔린 적막속에 드디어 사르르 미닫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봄비 내리듯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바스락 바스락...
홀라당 벗고 누워있는 수동이 곁에
소리없이 다가와 눕는
아아! 신비스러운 육체의 향연이여-!
새벽을 짖어대던 천둥 번개와
雲雨가 걷히자 여인은
어둠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졌다.
이날밤의 夜事는 신통하게도 수동이의 상사병이
꾀병처럼 나았다.
그렁저렁 세월은 흘러 서너달이 지나자 과부댁
수동어미의 배가 눈에 띄게 불러왔다.
"자식의 상사병을 고쳐주기 위한 어미의 희생이
악의 씨를 잉태 하였구나!"
수동이는 신을 저주하고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어미 뱃속에 든 패륜의 씨앗을 저주했다.
열달만에 태어난 女兒,
수동이의 딸인가?
누이동생인가?
과부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퍼져
온동네 사람들이 수근수근 손가락질 했다.
딸 아이가 3살되던 어느날,
고민고민 하던 수동이는
여아를 개울물에 집어던지고 달아났다.
그후 만주땅을 전전하며 세월은 흘렀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수동이도 30여년만에 해방된 조국
고향땅을 찾게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던가-!
옛날에 살던 집은 흔적도 없고,
마을 사람들도 아는이 하나 없다.
흘러간 비운의 세월을 되씹으며 되돌아 나오는 길.
10리밖에 외딴 주막집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술상을 차려오라 해서
30대중반의 주모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이윽고 주모를 품었다.
벌거벗은 주모의 아랫배를 쓰다듬다가
주모의 배에 굵은 상처자국이 만져 졌다.
"이게 웬 상처인가?"
"제가 3살때 오빠가 개울에 집어 던지고 도망쳤는데
마침 지나가던 스님이 구해줘서 살았고
이 상처는 그때 뾰족한 돌에 긁힌 상처자국 이랍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오빠를 기다리다가 10여년 전에
돌아가셨고 자기는 혹시 오빠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여기에 주막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중이라면서 한숨을 짓는다.
이런 기막힌 운명이 또 있을까?.
자신이 심은 씨앗이니 딸이 분명하고
어머니가 낳았으니 여동생이고
또 그녀를 품었으니 마누라가 아닌가?
기구한 운명을 통탄한 수동이는
그날밤 개울가로 나가 돌로 거시기를 짓이겨며
죽었다는... 슬프고도 안타까운 얘기 입니다.
울어야 하나요,웃어야 하나요-
(어느 야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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