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3.1∼1849.10.17)
‘피아노의 시인’ 이라 불리는 쇼팽은 39년의 짧은 인생 동안 오로지 작곡과 연주회에
전념하였다.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한 후에는 파리로 건너가 연주회로 번 돈을 모두 조국을 위해 싸우는
독립 운동가들의 지하자금으로 송금한 위대한 애국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폴란드를 사랑했던 쇼팽은 파리로 떠나올 때 조국의 흙 한 줌을 소중히
싸가지고 왔다. 쇼팽이 숨을 거두자 조국의 한 줌 흙은 그의 시신 위아래에 뿌려졌고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졌다.
‘여기 파리 하늘 아래 그대가 잠들고 있으나,
그대는 영원히 조국 폴란드의 땅 위에서 잠들어 있노라’ |
Frdric Franois Chopin
Fantasie Impromptu in C# minor, Op.66
쇼팽 / 즉흥환상곡
이 곡은 1834년에 작곡되었으나 그가 죽은 후 1855년에야 출판되었다. 그의 4곡의 즉흥곡 가운데 마지막 곡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다. 3부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리듬이 다른 왼손과 오른손의 빠른 악구(樂句)가 격렬하게 교차되는 중간부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온다.
이 즉흥 환상곡의 정식 명칭은 즉흥곡 제 4번이다. 쇼팽이 24세 때 작곡을 하였으나
쇼팽의 사후에 발견 되었고 너무나 환상적이기 때문에 “즉흥환상곡(Fanrasie Impromptu)"이라는별칭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죽은 후에 이 곡을 파기해 주기 바란다 ’고 유언을 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가장 유명한 곡이 되었다.
쇼팽은 폴란드에서 프랑스어 교사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4세 때 피아노 기초 교육을 받기 시작한 그는 12세 때 정식으로 작곡 교육을받았다. 15세 때 처녀작 (론도 작품 1)을 출판했고, 18세 때 베를린을 방문해 유럽 음악계를견문했다. 다음해 유럽 음악의 중심지 빈으로 가서 독주회를 열었다. 슈만은 "여러분,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십시오. 여기 천재가 나타났습니다." 라는 극찬을 함으로써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그는 여러 나라를 전전한 끝에 파리에 정착, 음악가로서 지휘를 굳혀 갔다.
26세 때 리스트의 소개로 진취적인 여류 소설가 조르쥬 상드를 만났다. 그때 이미 그는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섬세하고 내성적인 기질의 쇼팽은 남장을 하고 엽연초를 피우는 6세 연상의 상드의 극진한 병간호를 받으며 작곡에 전념했다. 이들은 마요르카 섬에서 사랑의 공동 생활을 즐겼는데, 이곳에서 쇼팽의 병세는 악화되었지만 주옥같은 명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그러나 영원할 듯하던 둘의 사랑도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공동 생활은 1846년 여름...그의 나이 36세 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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