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애
초기
일본 교토 시에서 사업을 하던 한국인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가 패망한 직후인 1945년 8월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귀국, 부모의 고향인 경상북도 대구에 정착하였다. 학창 시절 그는 학업 성적은 우수하지 않았지만 어떤 일이든지 몰두하는 성격과 함께 뛰어난 손재주를 가졌다는 평을 들었고, 이러한 손재주가 훗날 그가 기업인으로 활동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대구 성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미국인 독립 선교사 딕 욕(Dick York)이 운영하는 성경학교를 수료하고 신앙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62년부터 권신찬(權信燦, 1923년 ~ 1996년)이 대구에 개척한 교회에 출석하면서 그로부터 신임을 얻고 1966년 그의 딸 권윤자와 결혼하였다.1972년에는 미국 국제 복음주의 동맹 선교회(TEAM) 산하에 있던 공산권 선교 방송국인 극동방송에서 설교 프로그램을 맡고 있던 장인 권신찬의 추천으로 극동방송 부국장 자리에 올랐으나 이들의 설교 방식과 신학에 비판이 제기되어 1974년 권신찬 및 추종자 10여명과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1981년 12월 권신찬과 함께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정식으로 출범시키고 전도인으로 활동하였다.[7]
기업 활동
1976년 봉제완구 제조 및 수출업체인 삼우무역(三友貿易, 삼우트레이딩)을 인수하여기업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유병언은 1979년 주식회사 세모를 설립, 건강식품, 선박제조, 자동차부품, 건설 등 9개 계열사를 거느린 종합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세모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 유병언은 안정감을 주는 모든 도형의 기초인 삼각형을 의미한다고 밝힌 바 있으나,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유대인 지도자 모세의 이름을 뒤집었다는 견해도 있다.1986년에는 선박 사업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강 유람선 사업권을 취득하여 주목을 받았으나,1990년 선착장에 정박중이던 세모 유람선 2척이 태풍으로 떠내려온 경쟁업체 유람선과 충돌, 표류하다가 마포대교 교각을 들이받고 침몰하여 유람선을 정박하던 세모 직원 1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기도 하였다.
1991년 5월에는 한강 유람선 사업에서 철수한 원광해운 유람선 2척을 인수하여 한강 유람선을 독점 운항하게 되었으나 이 무렵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과 연루되면서 구속 수감되었다. 이듬해 오대양 대표 박순자로부터 자금을 받았다는 부분에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의 헌금을 상습 횡령하였다는 혐의는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4년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하였다.1995년에는 세모에서 해운사업부를 분사시켜 자회사 세모해운을 설립하고 서해안과 남해안 20여개 항로에 총 27척의 여객선과 화객선을 운항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연안여객선업체로 성장시켰으나 이후 무리한 투자 후유증으로 경영난을 겪다가 1997년 부도 처리됐다.
부도 이후
부도 이후 세모의 해운 사업은 1998년 온바다해운(2006년 경영난으로 폐업)을 거쳐1999년 3월 그의 아들들에 의해 설립된 청해진해운으로 승계되었으며, 세모의 한강 유람선 사업은 2004년 세양선박에 매각되었다.경상남도 고성군에 있던 세모의 조선사업부는 2005년 7월 주식회사 천해지로 분사하였다. 이후 유병언은 대외적으로 기업 활동을 중단하였고, 한동안 대한민국에서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작가 활동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의 모기업 아이원아이홀딩스 계열사 명단에 아해라는 이름의 기업이 올라있는 것이 확인되고, 아이원아이홀딩스 대주주인 유병언의 둘째 아들이 아해 국제사진전을 주관하는 '아해프레스'의 대표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미국에서 활동중인 사업가 겸 사진작가로 알려진 '아해'라는 인물이 유병언과 동일인물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었고,이는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추어 수준의 사진 작품들로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 등 유럽 각지에서 개인 전시회를 열면서 런던 교향악단을 초청하는 등 재력으로 주목받았으나, 전시회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거액의 후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루브르 박물관 전시회를 위해서 유병언은 110만 유로(약 16억 원)를 기부했고 베르사유 궁전 분수 재단장 사업비 140만 유로(약 20억 원)을 부담한 것이 밝혀졌다.천해지는 2012년 국제사진전을 주관하는 ‘아해프레스 프랑스’와 사진 예술 작품을 파는 ‘헤마토 센트릭 라이프 연구소’에 각각 14억원, 12억원을 투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유병언이 청해진해운 조직도에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청해진해운으로부터 매월 1,000만원의 급여와 자문료를 지급받아 실소유주로서 경영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포착되었다.검찰청은 유병언과 그의 장남 유대균을 소환하여 이에 관련한 사실을 조사하고자 하였으나 이들은 세 차례의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잠적하였다. 이에 인천지방검찰청은 유병언과 유대균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총 8,000만원의 현상금을 걸고 이들 부자를 공개 수배하였다.이후 제보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형사범 사상 최고의 현상금 액수인 6억원(유병언 5억, 유대균 1억)으로 인상하였다.
한편, 검찰·경찰 합동수사본부는 수사를 통해 세월호의 대한민국 도입 및 증축 과정에서 유병언이 자신의 개인 전시실을 만들기 위하여 무리한 증축을 지시하고, 복원성 문제를 보고받자 오하마나호를 먼저 매각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파악하였다.
특기 사항
- 유병언과 그 일가가 13개 해외법인을 통하여 대한민국 및 타 국가에 보유한 주식과 부동산 등의 가치가 한화 약 2,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대한민국에서 신분을 숨기고 자신의 호인 아해라는 이름만을 내세워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2012년에는 프랑스 남부에 자리잡은 쿠르베피(프랑스어: Courbefy) 마을을 52만 유로(약 7억 7,000만 원)에 통째로 사들여 주목받기도 했다.
- 태권도 유단자로서 1968년에 이미 공인 5단을 획득하였고,현재는 공인 7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대구권에서 무술계의 실권자로 활약하던 전두환의 친동생 전경환과 이 때 무술을 통해 맺은 인연이 계기가 되어 훗날 그가 기업 활동을 할 당시 전경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 대한민국 정치계와 연예계에 상당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 전양자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이며, 가수 겸 매니지먼트 기업인 박진영은 그의 조카사위이다.
- 그에게는 5명의 핵심참모가 있으며 모두 여성이다.
- 김혜경 한국제약 대표
- 김경숙 국제영상 대표이사
- 김명점 세모신협 이사장
- 윤두화 아이원 아이홀딩스 이사
- 이순자 전(前) 문진미디어 대표이사
- (자료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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